인터페이스와 사용자 화면으로서의 미래-현재: ‘디폴트’ 3부작

김지훈







김효재의 새로운 프로젝트 《디폴트(Default)》를 구성하는 3개의 영상 작품이 맺는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각각의 디테일을 캡처할 필요가 있다. 짧은 러닝타임에도 그 모두의 속도는 빠르며, 시청각적 정보 또한 의도적으로 포화 상태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작품 〈SSUL〉에는 핸드폰과 애플리케이션을 자신의 영혼과 동일시하는 김나라(@naras._)라는 인물이 핸드폰 화면 내부에 수많은 복제 이미지로 등장한다. 유튜브를 통한 실시간 대화 방송을 시도하는 이 캐릭터는 ‘하라주쿠 티셔츠 썰’을 시청자에게 이야기한다. 이 썰의 제목은 ‘인스타 스타의 프린팅 티셔츠’로, 인스타그램에 올린 자신의 얼굴 사진을 무단으로 프린팅한 티셔츠가 하라주쿠 편집숍에서 판매된다는 것을 알고 판매를 중지하고자 시도했으나, 공장이 중국에 있어서 포기했다는 내용이다. 썰을 푸는 와중에도 김나라의 모습은 결코 고정되지 않는다. 그의 이미지는 다른 자기 복제 이미지와 공존하고, 디지털 합성에 의해 다른 얼굴 및 신체 이미지와 포개지고, 자신의 얼굴조차도 여러 세부로 미세하게 쪼개지며 때로는 화장과 머리 모양이 달라진다. 이 유동적인 변화 사이로 떠오르는 ‘눈을 누르세요’ ‘변경하려면 누르세요’ ‘입을 벌리세요’ 등의 알림 메시지는 관객이 보는 화면이 유튜브 실시간 화면으로 국한되지 않는 스크린임을, 즉 인스타그램을 통한 셀피 촬영 및 오픈소스 이펙트 설정의 자기-연출 행위를 환기하는 스크린임을 알린다. 김나라의 실시간 방송이 종료된 후 그는 ‘아니메(anime)’풍 캐릭터로 변환되고, 여성의 내레이션은 자신의 이미지가 롤 플레잉 게임을 즐기거나 쿨한 이미지를 수집하는 해외 이용자들에 의해 카피당하고 다시 포스팅되어 왔음을, 그래서 나의 이미지 자체가 불확실해지고 그 자신도 여러 모습을 롤 플레잉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자신의 ‘디폴트’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사진 위치 정보의 장소와 국가가 불분명해진 얼굴.” 그리고 그의 미션은 미래의 캐릭터 Z를 만나는 것이다.

현란한 하트 무늬로 장식된 배경화면과 ‘Are You Real’이라는 메시지 너머로 관객을 바라보는 여자의 이미지 광고 화면(유튜브 이용시에 흔히 마주치는 ‘광고 후에 동영상이 재생됩니다’라는 메시지가 오른편 하단에 뜬다) 이후에 시작되는 〈Z〉에서 관객은 그 캐릭터의 정체와 조우한다. Z라는 이름의 아기는 에어드롭으로 비디오를 공유하기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이와 함께 들리는 ‘여보세요’라는 음성은 강렬하고 긴박한 비트의 테크노로 대체되고, 그와 더불어 공유 메시지의 알림창 또한 바이브레이터처럼 진동하면서 아기는 춤을 춘다. 배경 영상은 초록빛과 보라색의 강렬한 깜박임으로, 또 붉은빛의 도로를 광속으로 질주하는 탈것(또는 비디오게임 화면)의 1인칭 시점 이미지로 변환한다. 아기의 춤이 가속할수록 배경 영상은 내부의 프레임으로 거침없이 분할한다. 그런 가운데 쇠사슬과 빅뱅 이미지, 하트와 다이아몬드가 동시다발적으로 분출된다. 이 시점에 이르러 Z라는 이름의 아이는 가상의 미래에서 온 아바타임을, 그를 둘러싸고 만화경처럼 변화하는 배경 영상은 그가 에어드롭으로 공유하기를 원하는 비디오임이 분명해진다. 엔드 크레딧 이후, 또 하나의 추천 영상을 낳으며 이 비디오의 재생은 종료된다.

상자에서 제품을 꺼내는 행위를 뜻하는 말 〈UNBOXING〉은 유튜브에 존재하는 많은 시연 영상과도 연결된다. 여기서 Z와 김나라는 영상 통화를 시도한다(사실 이 이미지는 〈SSUL〉의 중간과 후반부에 두 번 나타나기도 한다). ‘그들은 우리가 누군지 몰라요(They don’t know who we are)’라는 메시지와 함께 제시하는 영상통화 화면의 상단에는 Z가, 하단에는 〈SSUL〉에 등장했던 김나라가 CG 아바타의 모습으로 제시된다. 그로테스크한 웃음과 더불어 ‘나는 너를 보고 있어(I’m watching you)’라는 Z의 음성이 들린 후, 화면은 붉은색 모노크롬 톤에 3차원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렌더링된 김나라의 초상 사진과 핸드폰 이미지의 일그러진 모형 이미지로 대체된다. 그 후에 이어지는 Z와 김나라의 대화에서 이 둘은 ‘최악은 아직 오지 않았어요(The worst has yet to come)’나 ‘이용하지 않으면 잃게 돼요(If you don’t use, you’ll lose it)’ 같은 메시지를 교환하면서 서로의 목소리를 바꾼다. 즉 Z와 김나라 모두 아이와 성인의 목소리를 넘나드는 복화술적 아바타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외친다. ‘플레이어를 증오하지 말고 게임을 증오해요(Don’t hate the player. Hate the game)!’

그렇다면 이 3부작이 어떻게 연결되는가? 〈난 마돌 상〉, 〈난 마돌 하〉, 〈난 마돌은 과연 물리적 형태가 있는 것일까?〉(2017)로 이루어진 연작에서 김효재는 난 마돌이라는 유물이 네트워크에서 끊임없이 순환하는 이미지와 데이터의 수집과 재배열의 결과임을, 그럼에도 그 결과는 유튜브 타임라인이 업데이트하는 유사 진실과 지식으로 이루어진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를 구성한다는 점을 사변적 다큐멘터리의 양식으로 전개했다. 그리고 이 양식은 데이터로 직조된 세계의 문제를 성찰적으로 구동하는 상위의 자아를 전제한다.1 《디폴트》 3부작에서 이 상위의 자아는 증발한다. 그리고 현재(김나라)와 미래(Z)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동시에 구동하는 게 자연스러운 멀티-인터페이스로서의 스크린에서 가상의 대화를 하는 것을 넘어, 연대기적 시간성을 넘어, 공존하고 뒤섞인다. 〈난 마돌〉 연작에서 데스크톱 작업 환경과 유튜브 타임라인을 넘나들던 다양한 클립은 이제 《디폴트》 3부작에서 원본과 진본 간의 구별이 무화한 자아 정체성의 이미지로 대체된다. 이와 같은 두 가지 변화는 〈난 마돌〉 연작의 표현과 문제의식을 업데이트한 결과이기도 하다. 〈난 마돌〉 연작에서 유튜브에서 채집한 영상의 재활용 및 관람 조건(화질이 깨지고 프레임이 축소된 영상)을 노출하는 방식으로 표현한 디지털 저작권과 작가성의 문제는 《디폴트》 3부작에서 자아 이미지의 무분별한 복제와 통제 불가능한 순환 문제로 연장된다.

이 문제를 업로드하며 끊임없이 유동하고 분열하는 김나라의 이미지에 기여한, 다양하고도 현란한 시각적 장치(3차원 디지털 애니메이션, 디지털 합성,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사용자 화면의 활용)를 통해 《디폴트》 3부작은 사변적 다큐멘터리에서 라이언 트레카틴(Ryan Trecartin) 스타일로의 모드 전환을 알린다. 트레카틴의 작품이 ‘온라인 상상계 내에서 정체성이 어떻게 여겨지는가’라는 이슈를 “이미지와 상품에 의해 형성되는 것으로, 대체 가능한 것으로, 분산된 권위와 작가성으로”2 표현한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말이다. 또한 트레카틴 작품의 캐릭터들이 ‘여러 역할을 롤-플레잉’하는 수행적인 정체성을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연결성, 가변성, 분산성을 통해 극화한다는 점에 착안한다면 말이다. 김효재는 《디폴트》 3부작에서 이와 같은 극화를 추구하면서도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의 사용자 화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세계와 세계 간의 연결, 자아와 자아 간의 연결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즉 김효재는 사용자 화면, 스크린숏, 오픈소스 이펙트 등 일상적으로 이용하고 소비하지만 진지한 무빙 이미지 작품의 영역에서는 간과할 수 있는 이런 요소들이 “세계들을 현전하게 하고 그 세계를 생산하는 동시에 드러내는”3 역량을 가졌다는 가설을 3부작 내내 밀어붙인다. 오늘날 우리의 디폴트는 다양한 세계와 분열된 자아, 현재와 미래가 분별 불가능한 시간성은 물론 그런 세계와 자아, 시간성을 가능하게 하는 인터페이스, 대기 화면, 사용자 모드 그 자체라는 가설 말이다.

3부작을 이루는 작품 내내 유튜브는 이 가설에 따라 아바타들을 구획하는 플랫폼으로 존재하지만 그 플랫폼을 체험하는 화면은 뒤집혀 있다. 관객 당신이 바로 그 아바타의 시점과 동일한 자리를 점유할 수 있고(즉 관객은 자신이 보는 스크린 안에 들어가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당신이 보는 아바타는 포스트-인터넷 조건 하의 일종의 거울-이미지라는 듯 당신을 응시한다. 이런 거울-이미지를 환기하면서 어떤 미래를 안내하기 위해 Z가 현재와의 접속을 시도한다. 《디폴트》 3부작에서 그 미래의 답은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또한 김효재는 그 미래를 상상하기 위해 동시대 미술에서 횡행하는 다양한 미래주의(예를 들어 아프로퓨처리즘이나 시노퓨처리즘)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미래는 당연하게도 그 미래를 작동시키는 현재의 의미와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유시 파리카(Jussi Parikka)의 말을 인용하자면 미래주의의 다양한 판본이 제시하는 미래는 “현재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이상으로 어떤 시간들이 우리의 동시대들인지 구체화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4 디지털 시대 자아의 상실과 가속화한 순환 및 분열에 관한 시나리오이기도 한 3부작의 미래는, 김효재에게는 우리의 현재를 규정하는 디폴트의 시간이기도 하다.







1.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김지훈, 「유닛을 매개하는 에세이적 관습: 포스트인터넷 무빙 이미지 아트의 어떤 경향」, 『계간 시청각』 2호 2018년 가을 (서울: 시청각, 2018), 21-35쪽.
2. Melissa Gronlund, Contemporary Art and Digital Culture (New York: Routledge, 2017), 158.
3. Paul Frosh, The Poetics of Digital Media (London: Polity, 2018), 1.
4. 김지훈 외, 「수천 개의 작은 미래들」, 『평행한 세계들을 껴안기』 (서울: 현실문화연구, 2018), 22.